교회와 진리를 생각하고

자신을 속이는 나 --악 써대는 깡통 진리

신성 LED 십자가 2008. 3. 12. 11:28

 

 

바로 이전 글에서 나는 육체의 배를 섬기는 그들이라고 말한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섬기는 그들이 우리이며 나 자신이라는 말을 다시 강조해서 하고 싶다.

 

부자 교회 지도자들만?--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탐심있는 자들의 교회 유입?--그렇지 않다.

 

소위 세상의 것을 탐하고,육체를 섬기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그 본색을 숨기며 산다?--그렇지 않다.

(지금껏 스스로를 자위했던 깡통 진리이며,통상적인 관념들은 자신의 모습조차 제대로 비추지 못하게

방훼하는 어두운 거울같고, 달아보면  무게도 속이는 거짓 저울 역활을 하고있다.)  

 

부자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근래의 사회적 비판은 강자이기 때문에 받는

 

주요한 대상으로서의 비판일뿐이다.

 

작은 교회 지도자 역시 한 움쿰꺼리도 않되는 교권에 유혹에 짓눌려 이웃 교회와는 울타리를 쳐대는

 

모습으로 별반 다를께 없다.

 

내 교회 집사에게 옆 교회 전도사라도 다가와 기도라도 함께 할라 치면,

 

마치 바지락 칼국수 팔며 사는 욕쟁이 할망구처럼 악을 악을 써가며 눈 흘기고 침 뱃기까지...

 

이러니 하나님의 왕국이 어디 있을까?

 

평신도 역시 내 자녀,내 재산, 내 체면,내 시간 우선함 때문에, 오늘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없다.

 

우리는 피조물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오염된 죄인이다. 이것이 지금의 우리 처지이다.

 

탐심있는 사람들이 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의 자리로 유입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탐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조금의 신앙 양심이 있다면 다만 내 급한 상황에 대한 변명으로써 복음적인 삶에 대한

 

우선 순위를 잘못 지정했다는 고백은 할 수 있을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중대한 우상 숭배가 되는것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청년때 가진것이 없을때는 언제나 주님의 세계를 꿈꾸며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전도자로의 삶을 갈망했지만, 살다보니 아쉬운 상황과 궁핍한 생활이

 

눈물도 나는 세상 살이로 나를 몰아가고 다시는 그러한 아픔을 겪지 않고자 남 보지 않게 살며시 내것에

 

대한 집착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우선 순위 빼앗기면 복음은 끝이 난다.

 

그래서 산 순교는 목숨을 바치는 피의 순교보다 어렵다.

 

내가 예물을 드리기 전에 이 예물이 정직과 하나님의 화평을 심어 거둔 예물이었던가를 기억해야한다.

 

열개중한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가? 그래서 그 대답에 순종하였는가? 기억해야한다.

 

주일 시간지키고, 그 장소 지켜서 종교 의식 참여 했는다가 아니라...

 

그래야 예배의 완성이다.

 

그래야 나의 구원이다. 그래야 나의 양심의 자유함이고,나의 생명 있는 숨구멍이다.

 

나의 참 기쁨이다. 나의 속죄!! 나의 참 진리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어느날 외면 당할지도 모르는 제도권 권력에 대한 나팔을 분다.

 

신앙의 일치를 ...  교회의 개혁을 기도하며 .... 꿈꾸며....

 

십대에게서 강탈된 신앙의 유산을 찾는다.

 

나의 하나님은 크고 힘있고 능있어 못 할일 전혀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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