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식코(SICKO)를 아시나요
이명박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추천받은 박영희 입니다.
오늘 한편의 영화를 보고나서 대통령께 꼭 추천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도 없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편지입니다.
<볼링 폴 콜럼바인>, <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번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식코 Sicko>란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미국은 전세계 의료비의 50%를 지출하고 있지만, 국민의 15%인 4천 5백만명은 우리나라와 같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전세계 부의 대다수를 차치하고 있는 1%의 미국인은 호화 병원에서 막대한 의료비를 지출하지요.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빈곤층과 간극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일 겁니다.
미국은 닉슨 대통령 시절 의료보험을 민간업계에 넘겼습니다.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의료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덕분(?)에, 보험 재벌과 의료 자본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를 하는 야만스러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민간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은 단지 보험료를 낼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간보험사들이 정한 보험가입 불가사유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키에 비해 저체중이라서, 비만이라서 가입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저야 우리나라에서도 민간보험이 거부되는 장애인이니, 미국에서는 더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민간보험은 철저하게 보험료는 고액으로 받고, 지출은 최소한으로 한다는 이윤 논리에 의해 운영됩니다. 과연 이걸 ‘보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미국에선 민간보험에 가입한다는 것, 그 보험을 가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할만합니다. 그런데 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더군요. 그 보험사에서 지정한 병원이 아니면 치료가 거부됩니다.
오늘 국회에서 열린 식코 시사회에 갔다 왔습니다. 한밤중에 어린 딸이 고열에 시달려 병원을 찾았으나 지정된 병원이 아니라고 해서 급한 마음에 애원을 하다가 보험사가 지정한 병원을 옮겼으나 손쓸 시간을 놓쳐 숨을 거두고 만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험이 없어서 간단한 처치도 못받고, 집에서 손수 찢어진 허벅지를 꿰메고, 사고로 손가락 두개가 절단이 됐지만 치료비 때문에 한개만 접합을 한 환자의 사연도 나옵니다. 하나 하나의 사연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택시를 태워 길에 버려두는 일도 일어납니다. 국가에서 거부한 환자들이 길가로 내몰리고, 결국은 캐나다로, 쿠바로, 국경을 넘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들은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아닌 것이 거의 없지요. 하지만, 어떤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굶지 않는 것, 살 곳이 있는 것, 교육을 받는 것, 아프면 치료를 받는 것,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만큼은 보장이 되어야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미국의 병원은 생명을 살리고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의료 상품을 사러 가는 곳으로 변질됐다고 느껴집니다. 민간보험사에서는 치료 행위를 ‘손실 발생’이라고 보더군요. 치료거부가 아니라 ‘지급거부’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철저한 시장 논리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마이클 무어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를 돌며 다른 나라의 상황을 봅니다. 물론 국가에서 의료보험을 관리하는 나라들이었고, 특별히 국가에서 지정한 병원에서는 아무런 조건없이 입원하고 치료받고, 빈곤층에게는 집에 갈 차비까지 지급합니다. 물론 이 나라들도 나름대로의 문제점은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의료에 대한 생각, 환자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님이 건강보험을 손질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죠. 지금은 모든 병원에서 건강보험을 갖고 치료를 받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건강보험 환자를 안받는 병원들이 생깁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선택과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그런 병원을 ‘선택’할 자유를 가진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1%가 아닐까요. ‘강부자 내각’처럼요. 좋은 장비와 인력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급병원으로 모일테고, 그런 병원들은 이윤을 뽑기 위해 그 부담을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릴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그리고 있는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미래가 오늘 본 <식코>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끔찍해졌습니다. 건강보험 카드 하나도 없이 사람의 생명과 몸을 사고파는 병원자본, 보험자본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져 돌림을 당하는 영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걱정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에서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를 검토했고 박성이 신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청문회 과정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는 저를 비롯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가 국민 건강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있도록 <식코>를 꼭 보셨으면 합니다. <식코>를 보신다면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OECD 국가 중 전국민건강보장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인 미국식 의료가 아니라 전국민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국의 NHS처럼 무상의료가 대안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식코>는 4월3일부터 전국 40개 개봉관에서 상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식코를 보고나서 소감을 국민과 나눠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2008. 3. 18일 박영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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