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할 수 없는 정치

[스크랩]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과 한반도 정책의 전환

신성 LED 십자가 2008. 10. 22. 23:43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과 한반도 정책의 전환

                                                                                  재미 진보학자-한호석

시장에서 들리는 파열음


세계금융시장에서 주가폭락, 신용경색, 환율불안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발표에 따르면, 2008년 10월 세계금융시장이 입은 손실은 1조4천억 달러이다. 세계거래소연맹(WFE) 발표에 따르면, 2007년 10월부터 2008년 9월까지 한 해 동안 세계증권시장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은 21조6천900억 달러이다. 같은 기간, 서울의 증권시장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은 308조 원이다.

붕괴위험을 직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구제금융 7천억 달러로 금융시장 파열을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7천억 달러는 2007년도 미국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3분의 1일에 해당하는 자금이며, 전세계 인류에게 100달러씩 나누어줘도 남는 액수이다.

그러나 파열강도는 더 높아져 금융시장 파산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미국에서 117개 은행이 파산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내놓았다.

금융시장 구제계획(financial-market rescue plan)이란 정부가 금융시장에 쌓여있는 부실채권을 사들임으로써 파국을 피하는 마지막 조치인데, 부시 정부의 구제금융투입은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치명적인 위험요인이 있는 탓이다.

첫째, 부시 정부는 부실채권규모가 얼마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 구제금융을 투입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실채권규모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구제금융 7천억 달러는 주로 주택융자(mortgage)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것인데, 그 이외에 금융시장 파열을 막기 위해서 쏟아붓는 구제계획 자금총액은 1조8천억 달러이다. 그렇지만 금융시장 구제계획은, 비유로 말하면, 조그만 바가지로 물을 퍼서 밑빠진 커다란 독에 붓는 것이다. 파열음을 내는 금융시장을 살릴 안전한 대피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둘째,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한계에 이르렀다. 2008년 현재 연방정부 재정적자 누적액은 9조6천340억 달러(1경1천16조 원)나 된다. 재정적자가 하루에 14억 달러씩, 1초에 100만 달러씩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이다. 재정적자의 증가는 금융시장 구제계획의 손발을 묶는 족쇄이다.

금융시장 구제계획이 실패하는 경우 파국적 붕괴가 닥칠 것이 분명한데, 그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충격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원리

빚더미에 깔린 미국 경제가 금방 무너질 것처럼 보이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세계 각국이 자국 제품을 미국 시장에 수출하여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재무부가 찍어내는 국채를 사들이거나 미국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사들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데도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지 않는 까닭은, 세계 시장에서 쓰이는 기축통화(key currency)를 달러화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내수시장의 통화공급요구에 따라 달러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의 통화공급요구에 따라 달러를 찍어낸다. 따라서 세계시장규모가 늘어날수록 달러공급규모도 늘어나게 된다.

대미수출국들은 미국 시장에 수출한 대가로 기축통화를 받아가서 자국의 외환저장고에 쌓아놓을 뿐 아니라, 미국이 찍어내는 채권을 계속 사들인다. 만일 대미수출국들이 미국발 채권을 사들이지 않으면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여 기축통화가 사멸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계외환시장이 무너지고 각국이 달러화로 보유한 자산이 증발할 것이므로 대미수출국은 끊임없이 미국발 채권을 사주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금융시장에 넘쳐나는 국채, 공채, 회사채를 모두 합한 총액의 30%에 해당하는 국채를 찍어내어 미국식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 재무부이고, 정부보증채권을 찍어내어 막대한 이윤을 긁어모은 것이 투기금융자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식 자본주의는 무역수지적자와 채권판매로 유지된다. 연방정부 화폐제조국에서 찍어낸 기축통화로 대미수출국이 파는 각종 제품을 사들임으로써 미국은 무역수지적자를, 상대국은 무역수지흑자를 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2006년 한 해 동안 새로 늘어난 미국의 무역수지적자는 7천626억 달러이다. 무역수지적자가 1초에 2만4천 달러씩 늘어난 것이다.

대미수출국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여 만들어낸 ‘경쟁력 있는 제품’이 미국 시장에 팔려나가 3억 382만 명 미국인의 과소비를 촉진시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대미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가지고 미국발 채권을 사들여 기축통화체계를 유지해주는 자본과 상품의 거대한 악순환, 바로 이것이 이명박 정권이 찬양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이며, 한국 경제가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대미수출의 작동원리이다.

투기금융자본의 행태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은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의 파산으로 시작되었다. 투자은행은 투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는 마구잡이식 투기에 몰두하여 천문학적인 이윤을 긁어모은 투기금융자본의 거점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투기금융자본은 그 거점에서 각종 파생상품(derivative)을 개발하는 신종투기수법으로 ‘떼돈벌이’에 열광하였다. 신종투기수법이란, 투기금융자본이 주택융자회사에서 주택융자를 사들여 그것을 담보로 새로운 증권을 만들어 금융시장에 내다 파는 수법이다. 이를테면, 100달러 짜리 자산이 여러 차례 복잡한 증권화과정을 거치면 400-500달러 짜리 파생상품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파생상품시장 규모는 2002년에 106조 달러였는데 2008년에는 531조 달러로 폭증하였다.

파생상품시장이 초대형 거품(super bubble)처럼 팽창하는 것에 정비례하여 주택시장도 비대해졌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융자회사인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Countrywide Financial Corporation)의 주가는, 1982년 이후 2007년까지 무려 2만3천%나 올랐다. 그 회사의 수익규모는 2002년에 183억 달러였는데, 2006년에는 327억 달러로 뛰어올랐다.

그렇지만 초대형 거품이 2006년부터 꺼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투기자본이 사놓았던 주택 60만 채가 매물로 쏟아져나왔다. 주택시장은 5천6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으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뉴욕 금융가에서 세계금융시장을 주무르며 활개치던 투기금융자본은 그렇게 파산하기 시작하였다.

투기금융자본이 활개칠 수 있었던 것은, 1981년 이후 미국의 역대정부들이 투기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풀고 신종투기수법을 허용해준 탓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규제철폐(deregulation)를 통하여 투기금융자본에게 ‘이윤추구의 무제한 자유’를 안겨주었고, 투기금융자본은 정치자금을 워싱턴 정가에 흘려보내 정권을 뒷받침해주었다. 연방정부 고위관리들과 뉴욕 금융가의 최고경영자들은 정책적으로나 인맥으로나 밀착되었다. 정권과 투기금융자본의 상호결탁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합리화해준 정치이념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 한다.

파산한 미국식 자본주의

미국인의 과소비가 한계에 이르고 미국 시장이 위축되어 대미수출국의 무역흑자가 줄어들면, 그래서 대미수출국이 미국발 채권을 사주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투기금융자본이 파산하여 세계금융시장에서 자본과 신용의 흐름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미국식 자본주의는 파산하는 것이다. 오늘 뉴욕 금융가의 참담한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식 자본주의는 3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파산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이 뉴욕 금융가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은 세계금융시장을 붕괴위기에 몰아넣는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전세계에 강요해온 신자유주의정권을 퇴장시킬 것이다. 요즈음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차츰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버락 오바마의 선전은, 돌발변수가 터져나오지 않는 한, 이번 대선에서 신자유주의정권이 패배할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열렬히 추종하는 이명박 정권도 파산대열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미국식 자본주의 파산과정은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 파산과정은 <한겨레> 2008년 10월 10일자 기사에 나온 표현대로, ‘신자유주의 난민’이 급증하는 고통스러운 불안정과 혼란의 연속이다. 또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으로 민심을 잃은 전세계 신자유주의정권들은 ‘신자유주의 난민’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파산과정이 마무리되는 201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세계화라는 말이 자취를 감출 것이며,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해온 전세계 신자유주의정권들이 줄줄이 퇴장하게 될 것이다.

1970년대와 오늘, 장기경제난의 정치적 의미

2008년 11월 4일에 실시될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과 상관 없이, 미국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으로 장기경제난에 빠져들 것이다.

미국이 장기경제난에 빠진다는 말은 미국의 세계지배력이 위축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세계지배력이 위축되면, 일차적으로 군비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해외주둔병력과 해외군사기지를 줄이는 감군조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반도는 미국의 차기정부가 해외주둔병력과 해외군사기지를 줄이는 감군조치를 시행할 대상들 가운데 제1순위에 오를 것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주한미국군은 아시아 대륙에 불안정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미국군 병력이다. 주일미국군이 계속 일본에 남아있을 것이므로, 주한미군을 철군해도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2)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면 미국이 북측과 관계를 정상화하여야 하는데, 관계정상화의 실현여부는 주한미군 철군문제에 달려있다. 주한미군을 철군하지 않고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3) 한반도에서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에 정비례하여 주한미군은 주둔명분을 잃어버리고 있다.

미국의 차기정부가 한반도 정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미리 내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난 시기 장기경제난에 빠졌던 미국의 역대정부들이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다시 짚어보면 정책전환방향을 예견할 수 있다.

미국이 장기경제난에 빠지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동아시아 정책을 전환한 것은 1970년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1970년대의 정권교체를 살펴보면, 1969년 1월 20일부터 1974년 8월 8일까지 닉슨 정부가 통치하였고, 닉슨이 탄핵으로 중도에 물러나자 1974년 8월 9일부터 1977년 1월 19일까지 포드 정부가 통치하였고, 1977년 1월 20일부터 1981년 1월 20일까지 카터 정부가 통치하였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70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9%, 인플레이션은 15%였다. 장기경제난에 시달린 닉슨 정부는 항공기제작회사 록히드 항공과 철도회사 펜 센트럴 철도에 구제금융을 투입하였고, 역시 장기경제난에 시달린 카터 정부는 자동차제작회사 크라이슬러에 구제금융을 투입하였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바꾸는 정책전환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이 1970년 2월 18일 연방의회에 보고한 외교특별교서에서 이른바 ‘새로운 평화전략(new strategy of peace)’을 천명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동아시아 정세를 바꾼 ‘새로운 평화전략’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새로운 평화전략’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대만주둔 미국군을 철군하였다.

1971년 4월 14일 닉슨은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완화하고, 중국과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것을 포함하는 다섯 개 항목의 새로운 중국 정책을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4월 16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닉슨은 중국 정부를 승인한다고 하면서,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장기목표라고 지적하고,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1971년 7월 9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비공개로 베이징에 가서 중국 총리 주은래와 비밀회담을 가졌다. 기밀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그 비밀회담은 미중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대만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만문제란 대만주둔 미국군을 철군하는 문제이다.

비밀회담에서 주은래는 키신저에게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인정하고, 대만을 본토에 귀속되어야 할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미국이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로 인정하면, 미국은 대만주둔 미국군을 철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기 마음대로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 미국군을 주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키신저는 단계적 철군방안을 꺼내놓았는데,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 것과 함께 대만주둔 미국군의 3분의 2를 우선 철군하겠다고 주은래에게 약속하였다. 관련문서들이 나중에 기밀해제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키신저가 비밀회담에서 주은래에게 약속한 것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무조건 퇴각한다는 것, 그리고 대만주둔 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한다는 것이었다.

대만문제를 풀기 위한 협상이 진전되자 닉슨 정부는 관계정상화에 나섰다. 1972년 2월 21일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닉슨은 2월 27일 상해에서 주은래와 만나 ‘중화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공동성명’에 서명하였다. 공동성명에는 1971년 7월 9일에 진행된 비밀회담에서 주은래가 받아낸 키신저의 약속이 이러한 문장으로 적혀있었다. “미국은 대만으로부터 모든 미국군과 군사시설을 철수하는 것이 종국적 목표임을 확인한다. 미국은 대만지역에서 긴장이 감소함에 따라 그 지역에 주둔하는 미국군과 군사시설을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만주둔 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한다고 발표한 때는 1973년 8월 26일이었다.

1974년 8월 8일 ‘워터게이트 사건’에 걸려 탄핵을 받은 닉슨이 백악관을 떠나고,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가 후임으로 백악관에 들어갔다. 국무장관으로 진급한 키신저가 그 무렵에 작성하여 포드에게 보낸 1급 비밀 비망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1) 1976년 중반까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기 바란다고 중국 정부에 알렸다.
2) 대만에 배치한 유(U)-2기(고공비행 첩보기)와 핵무기를 1974년 안에 모두 철수하겠다고 중국 정부에 알렸다.
3) 포드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1977년 1월까지 대만주둔 미국군을 완전히 철군하겠다고 중국 정부에 알렸다.
4) 주한미국군을 철군할 의사가 있음을 중국 정부에 알렸다.

비록 키신저가 포드에게 보고한 일정대로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미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였고 대만주둔 미국군을 완전히 철군하였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때는, 키신저가 포드에게 보고한 일정보다 2년 6개월이 늦어진 1979년 1월 1일이었다. 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만주둔 미국군의 단계적 철군을 완료한 때는, 키신저가 포드에게 보고한 일정보다 2년 3개월이 늦어진 1979년 4월 26일이었다.

다른 한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새로운 평화전략’은 미국군을 베트남전쟁에서 퇴각시켰다.

1971년 4월 27일 키신저가 닉슨에게 보낸, 기밀해제된 비망록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비망록에는 미국 정부가 북베트남 정부와 종전회담을 하든 말든 상관 없이, “우리는 결국 일방적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국군을 철군할 것이다. 우리 입장은 남베트남에서 어떤 특정정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남베트남 정부가 당신(포드를 가리킴)이 생각하는 것처럼 민심을 잃었다면, 우리 군대가 철군하는 즉시 그 정부는 무너질 것이다. 우리 군대가 철군한 뒤에 그 정부가 무너지더라도 우리는 다시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고 적혀있었다. 비망록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무조건 빠져나오는 퇴각결정을 내렸음을 말해준다. 그에 따라, 키신저와 베트남노동당 정치국원 데둑토(Le Duc Tho)가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어느 별장에서 만나 비밀회담을 시작한 때는 1972년 10월 8일이었다.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하루라도 일찍 빠져나오기를 바랐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퇴각일정을 급진전시켰다. 1973년 1월 27일 미국 정부, 북베트남 정부,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가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전쟁종식과 평화회복에 관한 협정’에 조인하였다. 그 협정 제4조는 “미국은 남베트남 내정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나 간섭을 중지한다”고 명시하였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이 퇴각하자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남베트남 정부가 무너지고 종전과 통일이 한꺼번에 실현되었다.

한반도에서 미완으로 끝난 ‘새로운 평화전략’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새로운 평화전략’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국군을 감축하고 남북정치회담 개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주한미국군 감축조치나 남북정치회담에 나서라는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미동맹과 반북대결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던 박정희 정부에게 주한미국군 감축과 남북정치회담 개최는 정권기반을 뒤흔들 위험한 사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가 말을 듣지 않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을 일방적으로 감축하면서, 박정희에게 남북정치회담에 나서라고 압박하였다. 1971년 2월 18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전문 ‘미국이 남북대화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하기 위한 제안(Proposal for Increased Display of U.S. Interest in Dialogue between ROK and North Korea)’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북측과의) 직접접촉을 통한 긴장완화라는 방식을 (박정희 정부가)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려면 좀더 강한 수단이 요구된다. (줄임) 만약 한국 정부가 긴장완화를 위한 만족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줄임) 우리가 북측과 비공식 대화통로를 찾아 나서겠다고 통고해야 한다.”

1971년 3월 닉슨 정부는 주한미군 제7사단을 전격적으로 철군하였다. 주한미군 6만6천 명 가운데 2만2천 명을 감군한 것이다. 일방적인 감군은 박정희 정부에게 커다란 압박이 되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박정희는 결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요구대로 남북정치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1972년 4월 26일 박정희는 ‘특수지역 출장에 관한 대통령 훈령’을 중앙정보부 이후락 부장에게 하달하였다. 5월 2일 이후락이 3박4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였고, 5월 29일에는 북측의 박성철 부주석이 2박3일 동안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와 관련하여 닉슨 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사람은 지미 카터(Jimmy Carter)이다. 그는 1975년 초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하면서 주한미국군 추가감군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그의 선거공약에 따르면 앞으로 4-5년 동안 주한미국군 3만2천 명을 추가로 감군하여 1만2천 명만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카터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실제로 1977년 5월에 대통령령 제12호를 발표하여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을 실행에 옮기라고 지시하였다.

마침내 지름길이 열렸다

10년 장기경제난에 빠진 닉슨-포드 정부와 카터 정부가 동아시아 정책을 바꾸었던 때로부터 근 30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동아시아 정세는 질적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 미국의 적대국이었던 중국이나 미국의 교전국이었던 베트남은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였고, 베트남과 대만에 주둔하였던 미국군도 이미 오래 전에 완전히 철군하였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는 바뀌지 않았다. 닉슨-포드 정부와 카터 정부가 동아시아 정책을 전환하면서도 북측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주한미군을 철군하는 과제는 내버려둔 것이다. 55년 묵은 낡은 정전체제 위에 남겨진 북측과 미국의 적대관계도 여전하고, 주한미군도 여전하다.

오늘날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으로 장기경제난을 겪게 된 미국의 차기정부에게는 동아시아에서 풀어야 할 미완의 과제가 있다. 그것은 닉슨-포드 정부와 카터 정부가 중국 정책, 베트남 정책을 바꾸면서도 미완의 과제로 남겼던 한반도 정책을 바꾸는 일이다. 미국 차기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북측과 미국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주한미군을 철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15년 동안 추진해온 한반도의 비핵화는 미국의 차기정부에게 한반도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10월 11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년 9개월만에 북측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한 조치는, 미국의 차기정부에게 한반도 정책을 전환할 지름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출처:민주주의2.0

**********************************************************************************************

 

1929년 대공황, 그리고 2008년 대공황을 눈앞에 두고서…
(서프라이즈 / 별가사리 / 2008-10-11)


1. 얼어붙은 시장

지난주 미 행정부의 금융 구제안이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것으로 세계 경제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듯합니다. 하지만, 시장엔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7,000억 달러라는 이 엄청난 돈도 수십 조(兆) 달러가 돌아다니고 있는 세계 시장 앞에선 한낱 코끼리 앞의 비스킷인가 봅니다.

최근 작금의 금융위기 사태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이미 미국 경제가 심장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면서, 자신이 지난 2월 미 하원에 제출했던 '미 금융 시스템 붕괴 12단계' 가운데 이미 최종 단계인 12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314680.html ]

대공황!! 루비니 교수는 지금, 이 끔찍한 말을 입에 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1929년 대공황이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이끌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데, 정말로 대공황이 다시 찾아오는 걸까요? 대공황이란 건 대체 뭐죠? 대공황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거죠?


2. 번영 - 대공황의 씨앗
 
대공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알려진 사망자 수만 1,000만 명이 넘는, 참으로 끔찍한 전쟁이었죠. 어쨌든 1차 대전이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이런 참혹한 전쟁은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전쟁을 끝낸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전쟁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 줄도 모르고요.

제1차 세계 대전은 전 유럽을 황폐화시켰습니다. 패전국 독일 뿐 아니라 전승국들에도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었지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과 예산을 낭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습니다.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본토에서 전쟁을 겪지 않은 유일한 국가입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공장들을 건설해 군수물자를 생산해온 미국은, 종전 후 막대한 생산력을 보존한 채 세계 경제에 편입되는 행운을 누리게 됩니다.

끝없이 펼쳐진 대륙에 흩뿌려진 무한한 자원, 그리고 엄청난 생산력까지. 뿐만 아니라, 1차 대전이 끝난 후 수많은 식민지들이 윌슨의 이른바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해방되면서, 미국엔 신천지나 다름없는 시장들이 속속 그 문을 열게 됩니다. 행운아 미국엔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유럽은 전쟁으로 폐허가 됐을 뿐만 아니라 패전국들은 식민지를 잃게 됐고, 세계의 공장 영국마저 미국의 생산력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1920년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비추던 태양은 차츰 미국으로 기울어져 갔습니다.


3. 금과 화폐
 
당시의 화폐 제도는 금태환을 기준으로 하는 고정 환율제(금본위)였습니다. 각국은 보유한 금의 양에 따라 화폐를 찍어낼 수 있었고, 중앙은행은 언제든 화폐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 각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화폐의 양은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에 따라 정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세계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본위 제도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상품은 공장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음에도 상품 판매량은 눈에 띄게 떨어져 간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풍족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이 상품을 꼭 필요로 할 것이었지만 시장에 돌아다니고 있던 화폐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물건은 팔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요를 초과해서 만들어진 제품은 이제 기업가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대신 물가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물가가 떨어졌음에도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들 화폐가 부족했으니까요. 결국, 공장은 생산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문을 닫아야만 했고, 노동자를 해고시켜 버려야 했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는 구매력을 잃게 되고, 낮아진 시장 구매력은 물가를 떨어뜨리고, 떨어진 물가는 공장문을 닫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4. 풍요 속의 빈곤
 
이 시기(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의 문제점은 화폐 발행량이 상품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디플레이션)

여러분은 혹시, "뭐야, 화폐가 부족하면 화폐를 만들어 내면 되잖아?"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당시 미국이 채택하고 있던 통화제도는 금본위제였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주요국들도 마찬가지로,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을 초과해선 절대 화폐를 찍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 당시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해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각이 여러분과 크게 달랐다는 건 아닙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대공황의 위기를 맞이하여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화폐가 부족하면 화폐를 늘려라. 하지만, 화폐 생산량은 금 보유량과 같아야만 한다. 고로, 화폐를 늘리려면 금을 늘리면 된다!"

금을 어디서 갑자기 캐오자는 건 아니었습니다. 땅 판다고 금이 나오나요, 어디? 루스벨트는 전 세계로부터 금을 사들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미국 전역에 걸쳐 금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고 외국과의 교역으로 이익을 보는 족족 이를 금으로 바꾸란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는, 대공황이 끝나고도 한동안 지속됐던 미국 경제 정책의 한 축이었습니다.

한데 금이란 총량 불변의 자원입니다. 지난 5천 년간 인간이 캐낸 금의 양은 26만여t. 매년 새로 캐내는 금의 양은 전체의 1%에 불과한 2천t 남짓에 불과합니다. 미국에 유입되는 금만큼 세계 다른 나라들은 금을 잃을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금을 잃은 나라는 화폐의 양도 같이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화폐의 양을 줄여나갈 수만도 없었습니다. 경제를 돌리려면 화폐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결국,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금본위제를 폐기하고야 맙니다. 자국 화폐를 금과 연동시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금을 사들이는 행위를 중단한 건 1944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눈앞에 둔 때였습니다. 그동안 세계 많은 나라들의 금 보유고가 거덜났고, 금태환제를 포기하도록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자국의 화폐를 싼값에라도 달러와 맞바꾸어야만 했지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금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화폐를 더 신뢰하고 있었거든요. 결국, 달러화의 가치는 점점 높아졌고, 이는 이후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작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됩니다.


5. 대공황 vs 제2의 대공황 

미국이 대공황을 이겨나가는 동안 유럽은 대공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루스벨트는 유럽에 대공황을 '수출'한 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국의 통화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외국에서 금을 빼온 것이니까요.

실제 영국과 프랑스 등 많은 유럽국들은 당시 미국의 금 매입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제 코가 석 잔데 남 돌볼 처지가 되나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는 거지요. 어쨌든 미국은 대공황의 위기를 훌륭히 극복했지만, 유럽은 또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준비를 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오늘날 전 세계에 짙게 드리워진 유동성의 위기는 많은 면에서 이 대공황의 시대와 닮았습니다. 우리는 옆 나라 중국의 공장이 과열되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만드는 자동차는 너무도 훌륭하지만, 포화된 시장은 이들을 도산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살 사람은… 살 사람은…

음? 뭐야? 살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어라? 뭔가 이상한데? 잠깐잠깐, 정말로 오늘날의 위기가 대공황과 닮은 거야? 

지금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일본, 한국 등 세계의 공장은 잘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러시아, 일본, 한국 등 세계 많은 나라들도 돈은 얼마든지 갖고 있습니다. 중국이 물건을 만들면 일본이 사가면 되지요. 근데 대체 뭐가 문제란 거죠? 

1929년 대공황이 물건을 만들어냈지만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거라는 건 이미 언급했던 바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분명 그때와는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 걸까요? 대체 무엇이 시장에 생산자도 있고 소비자도 있고 돈도 있는데 시장을 공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6. 기축통화 

전 세계의 금을 긁어모으다시피 하여 대공황을 이겨낸 미국. 하지만, 정작 미국은 더 이상 금이 필요 없었습니다. 금고엔 금이 넘쳐 흘렀고, 마찬가지로 시장엔 달러가 차서 넘쳐 흘렀거든요.

금본위제 하에선 금과 화폐의 양이 동일합니다. 고로, 루스벨트가 전 세계로부터 사들인 막대한 금은 이제 시장에 부족한 달러를 공급하는 역할 대신, 달러화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인플레이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금이 너무 많아 골치를 앓게 된 미국은, 결국 보유하고 있는 금을 세계에 뿌릴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그냥 뿌릴까요? 이거 '금'인데요?

금본위제 하에서 금을 세계 시장에 직접 유통시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언젠가 미국의 생산력을 능가하는 나라가 나타나서 미국이 했던 전략(-금 매입을 통한 타국 금 보유고 고갈 및 해당국의 통화붕괴 시도-)을 그대로 따라할 경우,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 경제에 굴복했듯이 이번엔 미국이 그 나라 경제에 굴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금태환성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면 금은 미국 시장을 빠져나가지 않는 편이 현명했습니다.

1944년, 미국은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 세계 각국의 경제 대표들을 초청합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진 모르겠지만, 회의 직후 그들은 금환본위를 바탕으로 한 달러 중심의 세계경제 출범에 동의를 표하게 됩니다. 신(神)이 그 가치를 부여했다고 하는 달러 - 이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발전시킨 건 바로 미국 자신의 의지였습니다.

'금과 달러를 맞교환해준다!!'

사람들은 이 말 한마디에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달러를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달러를 가지고 있는 건 곧 금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이렇게 미국은 세계 시장에 금 대신 달러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달러가 세계 통화의 기준이 되면서 미국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이득을 거두어 들이기 시작합니다. 그게 뭐냐고요?


7. 기축통화의 장점

'금환본위제' 체제 하에선 '금본위제'에서와는 달리, 세계 모든 나라 중앙은행들이 금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 나라만 금을 잔뜩 소유하고 있다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자신이 발행하는 화폐가 금을 잔뜩 소유하고 있는 나라의 화폐와 언제든지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온 방편입니다. 어쨌든 이것으로 금을 잔뜩 갖고 있는 미국과 금이 하나도 없는 유럽국들은 서로의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만족할만한 합의를 본 셈입니다.

이제 달러가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가 됐으므로 미국은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어떻게요? 그냥 줄까요? 이거, '돈'이라니까요? 세상에 누가 돈을 그냥 주겠습니까? 외국에서 물건을 '사오고' 달러를 '파는' 것입니다.

미국은 열심히 달러를 찍어내고, 찍어낸 달러를 외국에 팔았습니다. 바다 밖에서 들여온 원자재는 쌓여만 가는데 미국에서 나가는 건 오직 하나, 달러뿐이었지요. 미국은 들여온 원자재를 그저 열심히 소비만 하면 됐습니다.

기축 통화라는 건 이렇게 좋습니다.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달러'를 외국에 팔아 물건을 들여올 수 있다니…. 꿈만 같잖아요? 미국 경제는 꽁지에 불붙은 듯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달러라는 종이가 해외에서 불쏘시개로 밖에 쓰이지 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폐허가 된 유럽으로 흘러들어 간 달러는, 유럽의 무너진 경제 기반을 재건하고 해당국들의 소비 활동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특히, 마셜플랜이란 이름으로 유럽에 지원된 막대한 양의 경제 지원자금은 유럽의 경제를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붉은 물결로부터 서유럽을 지켜내는 정치, 군사적 성과마저 달성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렇게 대규모로 투자된 자금들은 다시 미국으로 유입돼 미국 경제를 부양시키는 자본의 선순환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훗날 미국은 투자한 금액의 몇 배가 되고도 남는 이득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마셜 플랜은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외 원조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 어쨌든, 그동안 신나게 달러를 찍어내다 보니 어느새 미국 정부가 보유한 금의 총량과 같은 양의 달러가 지구 상에 생긴 것 같군요. 이제 그만 찍어야지… 했는데 어라?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외국에서 왜 더 이상 달러를 공급하지 않느냐고 문의 전화가 폭주한 것입니다.


8. 통화주권의 독점 - 트리핀 딜레마
 
애초 미국 정부가 찍어낸 달러의 총량은 정부 금고에 보관된 금의 양과 같았고, 또 그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금고 속에 있는 금이 쿨쿨~ 잠을 자고 있듯, 찍어낸 달러 중에도 세상 돌아다니는 걸 멈추고 쿨쿨~ 잠을 자고 있는 녀석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해외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다들, 물건은 지금 당장 팔아 먹고살아야겠는데 잠자고 있는 달러를 찾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어디 짱박힌 거야!!) 세계는 곧, 달러 공급 부족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할 때부터 안고 있던 문제였지요.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어 버린 미국은, 바로 이 때문에 골치를 앓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죠? 지금 장난하심? 미국이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었고, 그게 바로 브레튼우즈의 결과가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근데 바로 '그게' 문제였습니다.

본래, 원칙적으로 세계 각국은 금을 보유한 상태에서 채무자들에게 상환을 보증할 수 있을 만큼의 화폐를 찍어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대공황과 양차 대전, 브레튼우즈를 거치는 동안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비록 현재 각국 정부들은 자국 고유의 화폐를 찍어내고는 있지만 그 가치를 달러화에 밀접하게 연계시킴으로써 사실상 통화주권의 일부를 상실한 상태인 것입니다.

어쨌든 미국은 이 새로운 달러 유동성의 위기를 맞이하여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음? 뭐야 이거? 꼭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만큼 달러를 한정해서 찍어낼 필요가 없잖아? 지금 당장 모든 달러를 금과 바꿔줄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찍어볼까? 찍는 대로 남는 건데, 뭐… ㅋㅋㅋ'

그래서 미국은 달러를 더 찍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달러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추가로 찍어낸 달러는 모두 미 국외로 빠져나갔습니다. 자국 통화 인플레를 유발시키려는 목적이 아닌 세계 통화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였으니까요. 이들 잉여 달러들은 해외로 나가 원자재 및 기타 상품으로 바뀌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사실상 이때부터 적자 예산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가계부를 항상 흑자로 맞추어야 하는 주부님들이라면 왜 예산을 일부러 적자로 운영해야만 하는지 무척 의아해하실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의 통화 안정성을 유지할 책임뿐만 아니라 시장에 달러를 공급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달러가 미국의 화폐이자 곧 세계의 화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 모순 - 트리핀 딜레마라고 불리는 - 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을 괴롭혀온 문제입니다.

아무튼, 지난 수천 년 동안 유지됐던 금과 화폐 사이의 1:1 교환비율 법칙은, 이후 달러가 금의 양에 상관없이 늘어나게 되면서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9. 베트남 전쟁 (1959~1975) 

세계 경제를 휘어잡은 덕분에 지상 유일의 패권국으로 군림한 미국. 이 미국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말부터입니다. 공식적으로 1963년 통킹만 사건으로 촉발된 베트남전은, 사실 미국이 동남아에서의 공산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기도 합니다.

현재 기준으로 약 7,000억 불(!)에 달하는 전비를 투입했던 베트남 전쟁. 하지만, 미국은 이 '더러운 전쟁'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미국을 기다리고 있던 건 10년간의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구 찍어낸 채권뿐이었죠. 결국, 미국 정부는 브레튼우즈의 근간이 되는 금환본위 능력을 차츰 상실해버리게 됩니다.

1971년, 세상에 돌아다니는 달러(혹은 달러 표시 채권)의 양은 미국 정부가 보유한 금의 양의 약 세 배까지 치솟았고, 마침내 미국 정부는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못 바꿔주겠노라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1944년부터 1971년까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지배해 온 브레튼우즈 체제가 마침내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각국 정부들은 중앙은행에 금 대신 달러를 비축해 놓고 있습니다. 바로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도 외환보유고에 무려 2,500억 달러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10년 전 IMF를 겪으면서 창고에 달러를 쌓아둬야 한다는 교훈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달러가 없으면 외국에서 기름도 못 사오고, 기름이 없으면 물건도 못 만들고, 물건을 못 만들면 수출해서 돈을 벌 수도 없습니다. 달러가 없으면 우린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고에 2,500억 달러를 묵혀두고 있다는 것은, 연리 5%로 따졌을 때 연 125억 달러의 기회비용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있는 것과 같은 뜻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 125억 달러를 허공에 날려버리면서까지 달러를 손에 쥐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어? 그러고 보니 자국 통화가 기축 통화가 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또 있었네요? 세계 각국이 매년 이렇게 손실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까지 미국은 거두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10. the Dollars (U$)

대공황 당시에는 세계 각국이 금본위제를 통해 자국 화폐의 안정성을 보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달러화에 세계 각국의 통화가 연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달러는 과거 인간의 통화 시장에서 화폐 지급력을 보증했던 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금과 달러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의 가치는 고정 불변이지만 달러의 가치는 가변이라는 점이지요.

세계의 모든 통화가 그 가치를 달러화에 연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기침을 하면 세계는 몸살을 앓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달러 중심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찍어내 봤자 우리 돈을 사줄 나라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가진 게 별로 없는 '가난한' 나라니까요. 그에 비해 미국 돈은 사줄 나라가 많습니다. 미국 돈만 있으면 중동에 가서 기름하고 바꿔올 수도 있고, 유럽에 가서 소시지와 바꿔올 수도 있고, 미국에 가서 비행기와 바꿔올 수도 있습니다. 달러는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화폐입니다. 달러의 가치는 절대입니다. 달러는 모든 화폐 가치의 기준이 됩니다.


11. 달러화의 위기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미국은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세계를 상대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국의 대표들이 한데 모여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곳에서 세계의 통화 정책을 검토하고 조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비록 시장은 하루하루 각국의 통화를 '알아서' 조절해 나가고 있지만, 시장 자체를 움직이는 중장기 정책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결정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 사기를 쳤습니다. 미국 '정부'가 사기를 쳤다는 게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잠시… 한눈을… 팔았을… 뿐이지요. (- -;;) 사기는 미국 기업들이 친 것입니다.

8년 전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미국 경기가 가라앉자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 위원회(FRB) 총재는, 경기 부양을 위해 수 분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한데, 떨어진 금리로 증가한 자본 유동성은 실물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쓰이지 못하고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데 쓰여버린 것입니다. (부동산 거품)

많은 사람들이 돈이 생기는 즉시 집을 사들였습니다. 무주택자는 저금리로 내 집을 장만하고, 집이 있는 사람들도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을 보고 집에 투자했던 것입니다.

소위 미국의 부동산 대출업체나 투자 은행이라 불리는 회사들이 채무자의 상환 능력도 알아보지 않고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해주었습니다. 대출을 해준 은행은 이 대출 증명서를 가지고 부실 채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판 것입니다.

채권을 산 사람들은 이걸 다시 누군가에게 팔았고, 팔린 채권은 또 누군가에게 팔렸습니다. 채권 시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미국 금융가는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미국 경제는 다시 한 번 꽁지에 불붙은 날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파생금융 활성화)

그런데 채권 만기일이 다가왔습니다.

중간에 채권을 거래했던 사람들은 이미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 튀었지만, 최종 거래처들은 문을 닫게 생겼습니다. 갖고 있는 게 온통 부실 채권뿐이었거든요.

사람들은 올라간 주택 가격을 갚지 못해 도망갔지만, 담보로 잡은 주택을 차압한 은행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라간 주택 가격은 사실 '뻥'이었거든요. 3만 달러를 빌려주고 담보로 잡은 4만 달러짜리 주택 가격은, 실제 거품을 빼고 나면 2만 달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행이 문을 닫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습니다. 부실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엄청난 손해를 보게 생겼으니까요. 한데 그보다 더 큰 일인 것이, 부실 채권들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게 돼버린 것입니다.

파생 상품이란… 음… 아무튼 대단히 복잡한 것입니다. 이 파생 기법으로 만들어진 부실 채권들이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여기저기서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전체 통화 시장은 교란되고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달러 외엔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튼튼하고 견실한 회사일지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채권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유래된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갖고 있는 자본이 달러 대신 채권뿐이라면…. 그 땐 끝장입니다. 그저 이 채권들이 부실 채권이 아니기만을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12. 기업의 위기 

중국 기업들은 돈이 많습니다. 하지만, 국제 시장에서 거래를 할 땐 달러를 내놔야 합니다.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도, 프랑스도, 러시아도… 그리고 우리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 시장에서 거래를 하려면 달러가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의 조선회사 같은 경우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선박 한 대를 수주받아 납품하여 대금을 받기까지 짧게는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원자재를 사오기 위해 어음을 발행하려 해도 어음을 받아주는 데가 없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부품을 못사오면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합니다. 공장을 멈추면 선박은 어디서 나오나요? 선박 팔아 먹고살아야 하는데 큰일 났습니다. 만들지도 못하고… 이러다 보니 달러 유동성 위기는 원화 유동성 위기로 번지고 있습니다. 

조선회사와 거래하는 하청기업들은 배 만드는 게 중단되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들은 이제 휴짓조각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원화 표시 채권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기업들이 현금 아니면 안 받겠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납품한 물건 대금이 언제 계좌로 들어올지 모르겠는데, 거래처에선 현금만 받지 어음은 안 받겠답니다. 뭐, 우리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나요?

큰일입니다. 돈이 돌지 않습니다. 경제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대공황이 정말 눈앞에 다가온 듯 보입니다.


13. 리더쉽의 위기

오늘날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바로 미국 자신입니다.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과 함께 달러화의 안정성을 보증할 수단을 잃어버렸지만, 달러 기축통화의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도덕적, 경제적 책무와 리더쉽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걸 져버렸습니다. 지난 8년간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여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했던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오늘의 위기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 손을 놓고 있을 따름입니다. 시장을 감독하지 못한 책임은 누구도!… 오늘날 미국 정부의 그 누구 하나도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1929년 대공황의 위기 때나 브레튼우즈 하에서의 달러 유동성 위기와는 달리, 미국은 더 이상 달러를 찍어낼 여력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시장은 더 이상 금환본위제로 움직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러의 신용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달러 자신인 현 상황에서, 경제 성장률을 초과해 달러를 찍어낸다는 것은 달러 기축통화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미국이 '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달러를 찍어낼 수 있지만 발권력 한도 아래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한국 시장에서도 달러를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달러 사재기를 자제할 것을 권할 만큼 달러 매점매석 행위가 극심한가 봅니다. 그럼에도, 달러 가치는 올라가고,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원화가치 하락 폭(40% 이상)은 경제 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와 견주어 봐도 너무 큽니다.


14. 신용의 위기
 

지난 7월 말쯤 등장했던 9월 위기설은 정부의 언론 탄압과 함께 가려졌습니다. 정부는 괴담 유포자를 철저히 색출해서 엄정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하루하루 미국에서 기업들이 쓰러져 가고 있었음에도 정부는 걱정 없다, 안심하라고만 외쳤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10월이 됐습니다. 이젠 누구도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 이래 수개월 동안 외환시장에 개입해 왔습니다. 경상수지 개선을 염두에 둔 고환율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정부의 환율 정책은 미세 조정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 개입주의를 표방하면서 스스로 급격한 시장변동성을 만들어 놓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와중에 외환 시장에 쏟아부은 돈만 2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정부 발표 100억 달러)

그러나 시장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정부는 스스로가 벌여놓은 일에 뒷수습하기에만 바빴습니다. 강만수 재경부 장관은 며칠을 사이에 두고 '현재 사태가 위기가 아니다, 위기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강만수 장관을 해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체 정부가 상황을 이해나 하고 있는 거야?'

시장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손에 쥔 실탄(현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시장은 더욱 경색되어져만 갑니다. 향후 환차익까지 노린 대기업들은 어떻게든 달러를 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국회의원들이 달러 모으기 쑈를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도 깨달아 갑니다. '아, 지금이 달러 사모을 적기로구나!!' 모든 시장 상황이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시장이 원하고 있는 건 강력한 리더쉽입니다. 립서비스가 아닙니다!

  • 말로는 주가를 5,000까지 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가는 1,300 선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 말로는 국민소득 4만 불로 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환율이 1,300원을 뚫는 바람에 국민 소득은 1만 5천 달러로 주저앉았습니다.
  • 말로는 747 비행기 얼마든지 태워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성장률이 4%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 말로는 금도, 달러도, 국민들에게 모으자~ 그러면 얼마든지 모아줄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안 도와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를 했던 1997년 한국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달러 사재기를 중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2008년 한국은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요?


15 '얼음 땡' 놀이

어린 시절에 다들 한 번쯤 해보셨을 놀이 가운데 '얼음 땡 놀이'란 게 있을 겁니다. 준비물도 필요 없고, 그저 애들이 세 명만 모이면 술래 하나를 정한 뒤 마구 뛰어다니는 놀이입니다.

술래 아닌 애들은 열심히 도망 다녀야 합니다. 술래한테 잡히면 자신이 다음 술래가 돼야 하거든요. 만일 술래가 발이 빠르다면 큰일입니다. 뛰어봤자 벼룩인 것입니다. 술래에게 쫓기는 아이는 금세 코너에 몰리게 됩니다. 술래가 다가옵니다. 아이는 곧 자신이 다음 술래가 될 것이라는 걸 직감합니다. 아이는 질끈 눈을 감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얼음!!"

얼음을 외친 아이는 이제 안전합니다. 술래가 그 아이를 잡아봤자 다음 술래로 만들 수 없습니다. 술래는 '얼음' 상태가 아닌 다른 아이를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얼음을 외친 아이도, 다른 아이가 그를 '땡' 해줄 때까진 꼼짝하지 않고 서 있어야 합니다. 그게 규칙이니까요.

오늘도 공원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신나게 얼음 땡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이 아이들에겐 근심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 근데 한 아이가 '얼음'을 외치고도 움직이고 있네요? 애들이 왜 움직이느냐고 따지지만 그 아이는 난 안 움직였다고 바락바락 우겨대고 있습니다. 우기던 아이는 땡깡을 부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합니다. 결국, 놀이는 파장을 맞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아~ 뽀롱뽀롱 뽀로로 할 시간이었군요….^^;;

아침 신문을 들여다보면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고 아주 난리입니다. 된장, 얼음 땡 놀이는 코흘리개 시절에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또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경제도 누가 빨리 '땡'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 저한테 부탁하실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전 벌써 '얼음' 했으니까요.

"얼음!!"

 출처: 서프라이즈

*************************************************반론*******************

당시 패권국이었던 영국은 31년에 미국은 33년에 금본위제에서 탈퇴했습니다.
그리고 브레튼 우즈 체제의 핵심은 금본위제의 복귀였고, 이는 사실 달러-금 본위제로로 복귀였죠.
하지만 금본위제를 유지해야 했던 핵심은 안정적인 환율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다시 안정적인 무역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고요.
여기서 핵심문제는 트리핀 딜레마도 중요하지만, 브레튼 우즈와 금본위제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unholy trinity 문제이죠.
자본의 이동성, 안정적 환율, 그리고 자율적 통화정책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없다는 것이 기본 문제입니다. 금본위제하에서는 안정적인 환율체제와 자본의 이동성을 보장했고, 각국의 자율적 통화정책을 희생시켰죠. 하지만 공황을 겪은 이후 각국의 정부가 깨달은 바는 국가가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영국의 대표인 케인즈와 미국의 대표인 화이트는 안정적 환율체제와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선택하고 자본의 이동성을 제한했습니다. 즉 각국 정부에게 자본 (특히 단기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보장해준 것이죠. 이 차이가 금본위제와 브레튼 우즈의 핵심 차이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브레튼 우즈는 1970년대 초에 닉슨이 금태환정지를 선언하면서 무너졌습니다. 그때이후 대부분 국가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죠. 또한 이야기가 복잡해질 수 있지만, 브레튼 우즈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정부가 대외적 규율을 받아드려야 하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폐지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정채적 자율성을 높아졌다고 할 수 있죠. 즉 브레튼 우즈 체제의 폐기가 미국 정부에게 자율성을 준거죠.
혹시 이런 문제에 관심있으시면 몇 가지 책을 추전해드립니다.
Karl Polayni. 1957. The Great Transforamtion.
Barry Eichengreen. 1996. Globalizing Capital.
Eric Helleiner. 1994. States and the Reemergence of Global Capital.
그리고 John Gerrard Ruggie의 1982년 기념비적 논문인 "International Regimes, Transactions, and Change: Embbeded Liberalism in the Postwar Economic System." International Organization 36(2) 도 꼭 보세요.


 

출처 : 사람세상
글쓴이 : 태백산 설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