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상 3 장 솔로몬의 재판
10년 전만해도 이런 얘기는 누구나 잘 아는 아주 유명하면서도 흔히 자주 했던 얘기라서
누가 말을 시작하면 결말까지 다 머릿 속에서 얼른 다 떠올리는 그런 교훈 담긴 옛날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 하나하고 대화하면서 솔로몬은 들어본 이름같고, 솔로몬의 재판은 모른단다.
인류 구원을 위한 창조주의 메세지는 이제 젊은이들에게는 시험에 안나오는 이야기이고,
사람들은 이 생에다 집을 짖고 있어서 이번달 주택부금에 도움도 안되고, 여기 신경쓰느니,
오늘 밤 드라마에서 그 여자의 약혼자인 재벌 회장 아들이 오늘 배 다른 남매인게 드러나냐, 안나냐?하는
게 관심사 인거다.
솔로몬 왕 앞에 두 여자가 왔는데 먼저온 여자는 나중으로 들어온 여자를 이렇게 고소한다.
우리 두여자는 한집에 단 둘이만 같이 사는데, 내가 아들을 낳았고, 저 여자도 사흘뒤에 아들은 낳았다.
하지만 나중에 애를 나은 여자는 엄마가 애를 짓눌러 버리는 바람에 죽었다.
자기가 잠들어 있을때 저 여자가 살아있는 자기 아들과 죽여버린 그 여자의 아기를 바꿔치기 했기때문에
나는 왕께 아이를 찾아 달라고 호소하러 왔다 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왕은 고심을 했겠죠?!! 그러나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너무 무심하게도 '나도 잘 모르겠으니,
칼로 아이를 반 토막내서 각각 나누어 주어라' 하고 말합니다.
이 긴박한 순간에 고소한 여자가 달려들어 자신의 증언과 소을 사실상 뒤집고 다만 아이를 살려서 저 여자에게 줄것을 애원합니다.
왕은 비로서야 친모를 분별해 내는 확증을 유도함으로써 성경에서는 이후에 사람들이 왕을 두려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 에는 무수한 사건이 기술되고 있고,하나님은 이 사건들을 다만 그 당시에 헤프닝이 아닌 인류를 향한 교훈이 있는 메세지로 기록되어지도록 유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하나?
다만 이야기가 여기서만 이 한번으로 별 다른 설명이 없는 채로 끝이 난다면 그냥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솔로몬 이라고 제목을 달면 되겠다.
하지만 적어도 생명을 찾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이 경우와 매우 유사한 경우를 찾아낼 수도 있다.
요한 계시록 12장
해(태양)를 입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가 다 되어서 산고를 치르고 있는동안 늙은 뱀이라고 불리는
악마, 곧 용이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결국 아이를 삼키지 못하고 그 여자를 해칠려고 여자를 쫏고, 그 여자가 낳은 또 다른 자손들과 싸우려고
한다라고 계속 쓰여 있습니다.
계시록에 대한 상황은 보통의 통설(--보통 기독교계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개념) 속에서는 정말
지구 종말 내지 인류 멸망 전에 일어날 초 자연적인 일들로 치부해서 미래 어느날로 여겨지는게 보통입니다.
또한 해석하기가 너무 난해해서 사실 모두가 공감하는 딱 부러지는 정설도 없는것이 사실이고요.
저는 어디까지나 제 소견으로 많은 부분 시대와 상관 없이 믿는이들의 투쟁적인 영적 생활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천주교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성모 마리아 라고 할 겁니다.
여자가 낳은 철장 가진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물으면 통일교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주라고 할 겁니다.
자신들의 종파를 옹호하기 위한 주장에 열심을 내다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메세지에 대한
물음 자체를 가제보지도 못할 겁니다.
나는 여기에서 여자란 성경에서 미숙한 존재로의 의미를 포함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여
믿는 이들을 낳는 전도자나 교회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철장을 가진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도 있겠고, 본문에서 또 다른 형제들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마리아를 포함한 교회 공동체까지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구약의 솔로몬 앞에서의 재판은 한 사건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상대로 하나님의 자손인 자녀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의 의지 표명이 더 부각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증거와 증인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결국 거짓 된 여자의 의도대로 흘러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여자는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나누어 갖자!
사탄은 결코 창조주의 자리로 올라 갈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그 자녀들을 멸망으로 인도 하는것 뿐이죠!!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필코 구원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음을 이 사건을 통해 인류에게 말씀 하고 계시는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유한한 인간 존재에 대한 생명의 질의가 없다는 것이 안타갑습니다.
악마는 분주함과 육체의 안락함을 찾는 삶 속에서 인간 스스로 존재 의식의 망각과 파멸을 자초하게끔
끌고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 있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질문은 찾고자하는 갈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두드려야 하고 하나님은 두드리는 모습을 구원의 과정으로
설정하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찾지 않는 자에서 생명은 값지지 않기 때문이며 생명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자녀로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제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자면 하나님은 자녀를 모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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