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일지

복음주의 -- 순장일지

신성 LED 십자가 2008. 12. 17. 17:46

 

작은 소책자나 판플렛등에서 ccc는 스스로 우리 단체를 초교파 복음주의로 소개하는 문구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다른 주의에 대한 어떤 점의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복음주의다라고 쓴 것을 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뭐가 어떤 면에서 이렇게 다르다라고 강조한면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난 한국교회 습성상 아마 여러가지로 매우 난처한 일이 많을 겁니다.

 

사전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보니까 시대적으로 상황에 따라서 뜻하는 바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카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탄트,바오로가 주장하는 속죄()와 부활의 신앙을 강조하는 입장에서의 복음 주의일 수도 있고,성서를 중시함과 동시에 성령에 의한 신앙의 체험을 강조하는 체험주의나 오히려 또 신학 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입장에서의 복음주의를 말하는 경우일 수가 있다는군요.

 

 

그리고 얼마전 문제가 되었던 역사 교과서 속에서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옹호했다라는 내용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몽땅 복음주의자라고 표현 했었습니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지 나만 잘 살면 되는거죠...뭐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단순이 어떤 행위의 표준이나 윤리 규범이나 의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 인간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생생한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라고 어디에 쓰여 있을까요?

네 거기 쓰여 있죠!!

 

그래서... 예수님 말 잘 듣고 사는거 ....아니고... 마음 자체를 예수 한테 줘 버린다는거 아니에요.

 

지금 소책자 여러개 그냥 쪽집게 해 버렸어요...

 

핵심이야 핵심...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110% 동의 합니다. 이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ccc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나....

 

맨날 이렇게 항상 예수 한테 모든 인생의 순간을 준 사람 진짜 별로 본적 없고...  다만 그 반대로 인간 스스로의 본성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을 전체의 99.99999999...8% 보는 것 뿐이고... 나 자신도 분명히 성령님한테 중심을 드렸는데 자고 일어나니깐 그 양반이 내려와 있더라 이거지.  에?

 

그 다음 날 선택의 상황이 또 오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순간 강력하게 성령이 내 마음을 강제하시는 게 아닌 것을 느껴요... 오히려 하나님이 숨어 계신다니깐?

 

난 환경과 상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선택을 합니다. 이게 내 일상이예요... 닥친 상황을 무시하면 난 정말 맨날 맨날 보는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예요.

 

내가 분명히 말 할 수 있는데 ... 하나님은 이런 모든 상황에서도 이런 예배와 순종을 원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해 다오.... 선택의 순간이야 말로 예배의 순간입니다. 주일 11시 그 장소 종교 의식 참여는 그냥 다 같이 모여서 기도하거나 노래 부르는 약속시간이예요. 화요일 퇴근길에 넉마걸친 할머니가 박스를 줍는데... 차 다니는 차도가 내리막이야... 이거 분명히 구루마 끌고 가면 잘 못하면 사고 나겠어. 이 때 하나님이 등장 ...쨔자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내 마음 귀퉁이에서 그냥 서계셔... 머릿 속에서 퍼지는 오르간 소리가 있으면 더 용기가 날꺼 같은데, 주일 저녁에 찬양단 하고 찬송하면서 흘렸던 눈물나는 감격의 순간을 좀 느끼게 해 주시면 볼 것도 없이 슬로우 모션 달려가 뒷 후광과 함께 정의의 사도되는건데...

예배 할 것인가? 순종 할 것인가?

 

이렇게 맨날 물어본다니깐요!!! 네가 날 사랑하느냐?

쫌 전에 물어 봤는데 오늘 또 물어봐. 10년을 살아서 수천번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하루 이틀 사랑한단말 안하면 삐지는 마누라 처럼...

 

책에서는 참 단순하게 표현했어요. 근데 책이 모든 상황에 대한 상세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사렛으로 살다보면 우리가 배워서 이해 했던 것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실제하는 현실이 모습을 서로 달리하고 있습니다.

 

전 분명히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 자유의지의 헌신을 날마다 새롭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주의는 마땅히 하나님의 인격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작용 반작용도 아니요 필요 충분도 아니요, 고용주와 피고용인과의 약속도 아닌 모든걸 희생함으로 보인... 사랑을 위해 피로써 보여지는 알아보지 못하는 고멜을 향한 어린양 신랑의 구애의 기다림이 하나님의 인격이란걸 알아야 합니다.

 

고속도로에 표지판이 있으면 알아보고 차를 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싸인이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평생을 표지판 닦고 보수하는 업으로만 끝날 수는 없습니다.

 

이 인격적 관계를 늘 잊지 않는 것은 복음주의의 마땅한 지향일 것입니다.

복음주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와 관계 맺음입니다.

 

오늘은 순모임 교제의 첫 장 내용인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나사렛 정다윗 순장입니다.

하나님이원하시는.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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