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로는 전쟁 할 수 없습니다.
전쟁하는 것은 종교의 모습도 가르침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빨간 벽돌과 대리석판으로는 성전을 지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성전이 무엇인지 정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무섭습니다.
이것이 인간 손아귀 속 교회모습이 담긴 역사입니다.
종교개혁이란 책을 얼마전에 샀습니다.
비교적 한참전에 샀는데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매우 흥미로왔는데 3분의 1정도를 읽자하니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참혹한 내용의 반복이고,
인간사 목숨을 건 권력 투쟁의 피비린 흑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신 목사님의 서재에 간혹 흥미로운 책이 있으면 잠깐씩 빼서 읽어 보곤 했었습니다. 지금도 10년전쯤에 양로원에서 보고서는 그냥 손에 들고 집에 온 책이 한권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따분하게 글만 써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내용들이 거의 종교개혁을 옹호하는 내용이란 것을 서서히 알게됐던 것 같습니다.
증인들과 증거들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그 책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증언, 서로에게 가했던 무자비하고 참혹한 폭력이 여실히 증언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학자 예술가 농민 사제 장사군 등의 거의 모든 부류의 눈 달리고 입 달린 사람이라면 전부 다 볼 수 있었고 전부 다 증언의 말을 남길 수 있었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생하면서도 함축적으로 잘 표현된 그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현실을 그대로 그린 그림서부터 상대편을 조롱하고거나 서로 잔혹하게 대하고 있는 그네들의 검은 속 마음까지 모두 그려 놓고 있는 그림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다국어로 번역하고 출판했다는 업적이 있고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소유적인 권세로부터 비판한고 나오게끔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예수님의 목적인 수 많은 생명을 목 조르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부터 학살한 것에 대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무비판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종교 지도자들은(아니 내면으로 이미 나 자신들과 동일한 꺽을 수 없는 인간 본성들은) 예수님이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배제한 채 다른 모양의 종교적인 열성을 신앙이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순종 없이 외면하는 삶을 살면서 헌금 주머니에 여러 가지 다른 것으로 채우고, 예수 아닌 다른 뿔 달린 것으로 제사하며 예배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역사 속 짧은 생의 한 순간을 살면서 교회 개혁 운동을 주창하며, 복음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내 일생이 다만 나팔수로만 끝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오늘을 기록하는 이 작업이 제 자신 매우 귀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전 종교 개혁 당시보다 더 딱한 처지, 인간들에게는 필연적이지도 않은 처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때는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두 집단은 자신들의 존재의 필연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현재의 종교적인 무관심과 이미 정리 된 듯 한 갈라진 교권 집단인 제도권 교회는 이대로 제 떡 조각 나눔이 끝났으니 고착화되는 것만 보고 있으면 될 일입니다. 하나님의 가슴 속 그의 소원하심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그 필연성을 하나님 스스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기 위해서... 그의 배고픔을 우리도 똑 같이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실제로 인천지역에서 90년대에 활동했던 ‘나팔소리’라는 소책자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영남 지방에서 출판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그리고 모두 잘 아는 ‘십대들의 쪽지’가 있었습니다.
이 세 출판물은 메이저급 번듯한 출판물에 비하자면 책 표지도 변변치 않게 보잘것 없는 출판물이었습니다. 항상 호치케스로 수작업 겨우해서 나오는 작은 책자였지만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에 대한 권고와 비 신앙적인 모습을 질타하는 진솔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딱 봐도 자리 잡고 사는 그 누구에게도 격려 받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통 나팔소리를 얻기 어려워서 직접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나 잠시 발행이 멈춘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십대들의 쪽지 발행인은 고인이 되셨다죠??!! 그래서 그 부인께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신다니 이러한 복음의 선한 고백이 있는 분들의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선한 양심의 선교사역은 이 땅에서 도통 성공이라는 결실로 허락되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세상은 타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진 영혼들을 건져 가실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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