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승찬이가 다빈치 코드에 대해 물어 봤습니다.
예수의 성배는 막달라 마리아이고,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후손이 있었다는...
사실 성서에 대해 좀 알면 이건 뭐 논의의 대상도 안됩니다.
왜냐면 예수가 만약 막달라 마리아와 사실혼 관계였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자격 자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방송 인터뷰를 하는 몇몇의 사제들과 학자들은 그리스도 신성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네요?
성경에서는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는 말을 합니다.만약 이 기록이 없었더라면 예언에 나온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라는 의문도 할 수있다.
하지만 이 기록과 구약에 대속 구원자에 대한 예표들, 예수님의 그 구약 약속에 대한 성취,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많은 이들의 대속물로 내어 주신다는 말을 한것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어린양인 것입니다.
어린양이 왜 어린양인지 아십니까? 어린양과 다 커버린 양의 기준은 숫양이 암양을 아는가 모르는가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배필이 공생애 때 있고 없고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배필은 교회입니다. 본질적으로 영적으로 심판과 천국이전에 예수님이 사셨던 생애에 과정은 혼인 이전에 배필을 부르는 구원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만약 여기서 아무리 육신의 모습이 본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상에서 예수님의 배필이 있다는 말은 구약의 약속이며 예표된 희생양인 어린양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삭의 희생을 대신한 어린양이 우리의 희생을 대신하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바로의 권세로 부터 해방되기 전 날밤 모든 집의 장자의 생명을 멸하실때 어린양의 대속의 피로 표를 한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대속하는 어린양이 예수님을 예고 한 것입니다.
신비한 소재라고 해서 그나마 예수님에 대한 영화를 하는게 반가운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20대 때 복음 전도지를 들고 예수님 영접하시라고 4영리를 딱피면 영접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한 5분 집중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실려고 수천년의 인류를 향하신 역사와 메세지를 수 많은 사람들을 보내셔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약속을 스스로 깨고 파괴하면서 도무지 구원은 바라지도 않고 다만 이 세상에 집착한채 더 많은 육신의 욕구에만 몰두합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외면할때, 이제 죄에 대한 값을 하나님 스스로 대신하시고 기필코 자기 백성을 살리실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죄의 대속으로 내어주시고 믿음을 의로 여기셔서 오직 믿음이 있는 백성을 구별하여 구원하시리라 하셨습니다.
풍족한 시대이고 즐겁고 안락한 때입니다.
귀에 즐거운 내용만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죄인 되 파멸로 치닫는 인류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애절한 사랑이 오랜 역사의 시간과 광장의 외침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니다.
영화 한편의 흥미 거리나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타협된 연인들의 가벼운 하루나 피곤한 예수쟁이들의 고리타분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과 생명이 어린양으로 오실 수 밖에 없는 그의 삶과 죽음에 있습니다.
이 인생의 짧지 않은 시간이 육체의 만족과 세상을 위함이 아닌 우리의 회개함을 위해 하나님의 기다림으로 존재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천국은 꽃이 피고 시들지 않고, 그의 백성을 위해 예비 되었으며, 그의 사랑과 왕국의 확장은 무궁히 펼쳐질 것이다. 알렐루야!!
다윗의 노래 정다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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